일러스트=김성규 기자 |
담뱃값 인상 한달, 끊으셨나요?
담배는 중독
값 올리면 흡연자 줄지만
의지만으론 끊기 어려워
전문가·보조제 도움 필요
결국 습관이 좌우
금연 1년 이상 지났어도
腦는 니코틴의 맛 못잊어
흡연욕구 강한 순간을
다른 습관으로 넘겨야
"이제 진짜 담배 완전히 끊어볼랍니다."
지난 27일 오후 6시쯤 서울 하월곡동의 성북구 보건소 금연클리닉. 50대 초반의 남성은 의자에 앉자마자 결연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20대 중반 군대에서 담배를 배웠고, 40대엔 9년 동안 끊은 적도 있는데 일 년 전부터 다시 하루 30개비 정도 담배를 피우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보건소 금연상담사는 그에게 "충분히 금연에 성공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양란 금연상담사는 "이분은 올 들어 1648번째로 우리 금연 클리닉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월 등록자는 363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올해 담배를 끊겠다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금연 열풍'은 전국적인 현상이 됐다.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보건소 금연클리닉에 등록한 사람은 27일 현재 14만6100여명. 지난해 같은 기간의 약 4배 수준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통 연초에 금연을 결심하는 사람이 많은데, 올해는 담뱃값이 인상되고 모든 음식점·커피숍 등으로 금연구역이 확대되면서 금연하겠다는 사람들이 예년보다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2013년 우리나라 성인 남성 흡연율은 42.1%. 오는 2020년까지 29%로 낮추겠다는 것이 정부 목표다. 이런 상황에서 금연클리닉 등록자 급증은 일단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를 비롯한 사회 일각에서는 금연이 그렇게 쉽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금연클리닉 등록자 급증이 곧 급격한 흡연율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속단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중독 분야 전문가인 김대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6개월 정도 지나 인상된 담뱃값에 적응이 되고 내성이 생기면 금연했다가도 다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중독이란 게 그만큼 무섭다"고 말했다.
미·영 등 외국에서도 담뱃값 인상으로 흡연율 낮춰
금연하겠다는 사람이 갑자기 늘어난 가장 큰 요인은 담뱃값 인상이다. 2005년 이후 10년 만에 한 갑에 2000원이 올랐다. 담뱃값 인상은 서민층이나 청소년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성북구 보건소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담배를 끊겠다는 사람들은 주로 주변 권유나 건강 등을 이유로 들었는데, 올해는 경제적 이유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도 담뱃값 인상으로 담배 소비가 줄고 흡연율이 떨어진 사례가 꽤 많다. 영국의 경우, 1992년 한 갑당 평균 2.08파운드였던 담뱃값을 2011년 6.63파운드까지 올렸다. 같은 기간 담배 판매량은 857억 개비에서 420억 개비로 절반 이하가 됐다. 성인 흡연율은 2000년 27%에서 2010년엔 20%로 떨어졌다. 영국의 담뱃값은 요즘 한 갑당 11파운드(약 1만8000원) 정도다. 미국도 2009년 담배 가격을 평균 22% 올렸고, 성인흡연율은 2008년 20.6%에서 2010년 19.3%로 낮아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캐나다·프랑스·일본·멕시코·터키·우크라이나·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도 담뱃값을 올리자 흡연율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담배 한 갑 가격(6.4달러)에 비하면 아직도 국내 담뱃값은 낮은 편"이라고 했다.
음식점·호프집 등으로 금연구역을 대폭 늘리고 정부와 지자체, 사회단체 등이 다양한 금연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도 금연 추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상당히 궁지에 몰린 상태"라며 "'이런 대우를 받으며 담배를 피워야 하나'라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사람도 많더라"고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 금연치료제나 금연보조제 처방을 받으면 병·의원 상담료와 약값의 70%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국립암센터 명승권 박사는 "혼자 힘으로 금연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6개월 이상 금연에 성공할 확률은 4% 안팎에 불과하지만, 전문가와 금연 상담을 하는 경우엔 11%로 높아지고, 약물치료를 하면 17~26%까지 치솟는다"고 했다.
올 상반기 중엔 담뱃갑에 흡연 경고 그림을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전 세계적으로 경고 그림을 도입한 나라는 77개국이고, 내년 4월 유럽연합(EU)이 동참하면 경고 그림 도입 국가는 100여 개국으로 늘어난다. 복지부 관계자는 "경고 그림 도입도 국제적인 흐름 중 하나"라고 했다. 서울시 의회에선 시내 모든 거리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조례도 최근 발의됐다.
담배로 생긴 '쾌락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사회 전체적으로 금연 열기가 뜨겁지만 이와 무관하게 흡연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많다. 국민건강증진법은 밀폐된 공간에 환풍 시설과 재떨이를 갖추되 테이블과 의자는 뺀 '흡연실'은 허용했다. 최후의 보루는 남겨준 셈이다. 이에 따라 음식점이나 주점 등을 중심으로 흡연 부스를 설치하는 곳도 늘고 있다. 일부 지자체나 대학들도 간접흡연 방지를 명목으로 흡연공간을 따로 마련하는 경우가 있다.
기존 담배 대신 니코틴을 흡입할 수 있는 대체재도 다양해졌다. 작년 말 이후 전자담배 구매가 크게 늘었고, 인터넷 쇼핑몰을 중심으로 직접 담배를 말아 피울 수 있는 '롤링 토바코' 등도 인기다. 한 보건 전문가는 "담뱃값이 오르면 다른 방법이 생기는 게 마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푸는 풍선 같다"고 말했다.
담뱃값이 인상된 지 한 달 정도 지나면서 이미 금연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람도 나오고 있다. 담배를 피운 지 5년 됐다는 30대 회사원은 "한 3주 잘 참았는데 흡연량을 조금 줄이면 부담도 크지 않을 것 같아 다시 피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 금연콜센터 관계자는 "전화하신 분 중 43% 정도는 한 달도 안 돼 담배를 다시 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건 니코틴의 강력한 중독성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니코틴의 중독성은 어떤 마약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김대진 가톨릭대 교수는 두 가지 근거를 들었다. 우선, 뇌에 도달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필로폰(히로뽕)은 뇌 도달 시간이 17초인데 니코틴은 5~7초다. 흡입 횟수도 많다. 김 교수는 "담배 한 개비당 흡입 횟수는 평균 10번으로 하루 한 갑이면 200번이고 일 년이면 7만3000번이다. 그만큼 뇌가 반복적으로 니코틴에 노출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니코틴의 영향은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뇌 속에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는데 니코틴이 이 도파민의 수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힘들고 스트레스받을 때 담배를 피우면 마음이 안정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대진 교수는 "몸속에 들어간 니코틴은 20~40분 정도 역할을 하고 길어도 한 시간을 넘지 않는데, 그때가 되면 금단 현상이 생기고 담배를 원하는 강력한 욕구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런 신체적 중독보다 더 무서운 건 정신적 중독(의존)이다. 서홍관 교수는 "금단 현상은 금연 후 48시간이 가장 심하고 일주일이면 거의 사라진다. 하지만 정신적 의존은 정말 오래간다"고 말했다. 흡연가들은 "한번 담배를 피우면 금연은 불가능하다. 평생 참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데 전문가들은 "근거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담배를 피웠을 때 만들어진 행복한 기억, 즉 '쾌락기억'의 존재 때문이다.
산 정상에 오르거나 승진을 해서 최고의 성취감을 느꼈을 때, 소중한 사람을 잃어 슬펐을 때, 둘도 없는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성관계를 가졌을 때, 술을 마셨을 때 등 모든 희로애락의 순간에 담배를 피웠던 기억이 평생 뇌 속에 남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와 비슷한 상황이 되면, 금연한 지 1년이 됐던 10년이 됐던 담배에 대한 유혹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흡연과 금연의 갈림길, 결국 '습관'이 좌우한다
전문가들은 담배를 끊은 지 3~6개월은 돼야 어느 정도 금연이 안정화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한다. 한 달 정도는 "첫 단추를 잘 끼운 정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6개월, 1년이 돼도 방심하면 안 된다. 담배를 피운다는 건, 니코틴 흡수와 쾌락기억의 되살림 이외에도 생활 습관, 문화와도 깊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서홍관 교수는 "가장 좋았던 순간에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하고, 식사 후에 양치질하고, 기분 전환을 위해 간단한 운동을 하는 등 흡연 대신 다른 습관을 몸에 익혀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금연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고 했다.
금연했다가 뜻하지 않게 한두 개비 피우게 됐을 때는 '재발'이 아닌 단순 '실수'로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대진 교수는 "1년이나 금연했는데 술 마시다 한 개비 핀 걸 갖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이건 잠깐 실수한 거고 난 여전히 금연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용기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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