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9일 월요일

사소한 일에 '욱' … 뇌·혈관이 '억'

분노를 억제하지 못해 발생한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분노는 상대방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피해를 초래한다. 뇌 세포를 파괴하고 혈전을 유발한다. 사진=서보형 객원기자

무엇이 사람을 그토록 분노하게 만들까. 최근 잇따라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의 키워드는 ‘분노’다. 땅콩 회항, 어린이집 폭행, 주차 시비 야구방망이 난동, 결별한 연인의 차량 돌진 사건…. 사건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주변엔 분노가 넘쳐난다. 사소한 일에 욱하고, 말 한마디에 발끈한다. 잠재된 분노는 질병이다. 뇌와 혈관을 겨냥해 신체 건강을 공격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분노 패턴을 파악해 분노를 다스리지 않으면 부메랑이 돼 심신을 파괴한다”고 경고한다. 분노를 성인병처럼 평소에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노를 일으키는 질환, 정신장애

분노조절장애의 의학적 진단명은 충동조절장애다.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자주, 과도하게 표출하는 것을 통칭한다. 충동조절장애는 다양한 정신질환을 포괄한다. 병적 도박, 절도광, 쇼핑중독, 성 도착증 등도 이 범주에 들어 있다.

분노는 왜 생길까. 분노는 어떤 사람에게서 자주 나타날까.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승걸 교수는 “충동조절장애 중에서 자기애성 인격장애, 히스테리성 인격장애, 반사회적 인격장애, 양극성 장애(조울증), 편집적 인격장애, 간헐적 폭발장애 환자들에게서 분노와 폭력성이 동반된다”고 말했다.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실제 위치 이상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고위층인 경우가 많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남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공격성을 보인다. 사회규범을 따르지 않아 범법행위를 반복하기도 한다. 쉽게 흥분하고 공격적이어서 폭력적인 성향을 띤다. 흔히 알려진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해당된다.

반면에 간헐적 폭발장애는 외부 자극에 폭력이나 기물 파괴 등 공격적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다른 정신장애가 없는 경우만 해당된다. 그래서 실제 진단되는 경우는 드물다. 폭발적 행동을 주체할 수 없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행동 직후에 즉각적으로 안도한다. 발작이라고 봐서 간질약이 처방되기도 한다.

주위에 흔한 분노라도 질환에 의한 것일 수 있다. 강 교수는 “화를 못 참고 폭발하는 증상은 다양한 정신질환에서 엿볼 수 있다”며 “이들은 약속 혹은 대기시간이 십여 분 지체되는 것만으로도 심한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런 사람은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하다. 항우울제·항불안제·기분조절제 등 약물처방이나 상담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인지행동 치료가 포함된다.

부당한 대우라고 느낄 때 분노

주차 지적에 분노해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노원 주차 시비’ 사건.
모든 분노가 질환은 아니다. 하지만 질환에 따른 분노를 포함해 대부분의 분노가 발생하는 과정은 비슷하다. 바로 ‘분노의 알고리즘’이다. 사람은 어떤 자극을 받으면 그 자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름의 의미로 해석한다. 이를 ‘자동사고’라고 한다. 자동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행동·말·상황을 접할 때 순간 느끼는 감정이다. 그 뒤에는 자동사고에 따른 감정이 따라온다. 이 감정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감정이 폭발해 행위를 취하는 것이 바로 분노의 표출이다.

‘노원 주차 시비’로 일컬어지는 야구방망이 난동사건(사진)을 보자. 피의자 최모(36)씨는 자신에게 ‘주차를 잘못했다’며 지적하는 행인 A씨(56)를 야구방망이로 폭행했다. 최씨는 A씨의 말을 ‘나를 무시한다’거나 ‘나를 우습게 본다’ 혹은 ‘부당하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이 자동사고다. 이는 ‘화’라는 감정을 불렀고, 폭행으로 이어졌다.

건강한 정신의 사람이라면 조금 다를 수 있다. 우선 A씨의 지적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말 내가 주차를 잘못했나?’ 하고 확인하거나 무시한다. 이렇게 자극을 쉽게 넘기는 사람을 소위 ‘멘털(정신력)이 강하다’고 한다. 반대의 경우를 열등감·피해의식 혹은 ‘유리멘털’이라고 한다.

분노를 차단하는 기회는 또 있다. 화가 났더라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성으로 억제하는 것이다.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신영철(정신건강의학과) 소장 은 “분노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부당한 대우다. 무시당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며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망신·꾸중·지적 등으로 인해 마음의 평정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강박관념 강한 사람이 위험

자동사고가 객관적인 사고와 격차가 클수록 심각성을 의미한다. 비정상·비이성적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자동사고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즉 분노에 약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우선 말과 생각에 ‘Must’가 많은 유형이다. ‘절대로 ~하면 안 돼’ ‘자고로(당연히) ~해야지’ 등의 표현이다. 이런 말을 잘 쓰는 사람은 자기 주장이 강하고 확고하다. 자기의 생각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믿음과 기대가 크다. 이런 생각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진행되지 않거나 반론이 제기됐을 때 과민하게 반응한다. 

인제대학교 스트레스연구소 우종민(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소장은 “늘 ‘~해야 한다’는 단정적인 표현을 잘 쓰는 사람은 사고의 유연성이 결핍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단순한 지적에도 자기를 무시한다는 생각에 언성이 높아지거나 행동이 극단적으로 치닫는다”고 말했다. 완벽주의나 착한 사람 콤플렉스처럼 강박관념이 강한 사람에게서 분노를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좌절도 분노와 연관이 깊다. 좌절을 겪어보지 못했거나 반대로 지나친 좌절을 맛본 사람일수록 분노에 취약하다. 좌절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가 꺾이는 좌절에 대처하는 법을 모른다. 학습된 습관형 분노일 경우가 많다. 분노를 하면 내 주장이 받아들여지거나 일이 해결되는 경험이 쌓이는 경우다. 반면에 지나친 좌절은 분노를 키운다. 쌓인 분노는 외적인 원인으로 탓을 돌린다. 충동적 표출형 분노가 여기에 해당한다.

분노, 도대체 왜 늘어날까.

2009년 이후 4년만에 충동조절장애 환자수가 32.6% 증가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충동조절장애(F63)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인원(외래·입원 포함)은 2009년 3720명에서 1년 만인 2010년 4375명으로 17.6% 늘었다. 4년 만에 32.6%가 증가했다. 비교적 중증을 나타내는 입원환자는 같은 기간 65.6%나 늘었다. 이 수치가 단지 충동조절장애로 병원에서 진단받은 인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분노 사례는 이보다 많다.

분노 사건·사례가 증가하는 이유로 여러 가지가 꼽힌다.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꼽는 것이 바로 핵가족·한 자녀 출산 등 가족문화다. 가족 구성원이 줄어들면서 자신의 욕구를 거르는 장치가 없어져 분노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 소장은 “과거 대가족일 때는 웃어른과 형제에 의해 좌절이 적절하게 통제됐다”며 “분노를 컨트롤하는 타워가 없어지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분노를 다스리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얼마든지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 소장은 “마음도 몸과 같아서 운동을 통해 강하게 단련하는 멘털 피트니스가 가능하다”며 “긍정적인 사고, 자신감 회복, 사고의 유연성을 통해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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