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3일 금요일

과거-현재-미래를 대하는 태도, 속담에 담겨 있네

시간을 바라보는 다섯 마음

사람은 내일의 가능성을 위해 오늘을 사는 존재다. 사진/이고은세상이 아무리 불공평해도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바로 시간이다. 그 시간이 만들어내는 세월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재구성되기도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이 있다. 어려운 일이나 고된 일을 겪은 뒤에는 좋은 일이 생긴다는 희망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보상이 돌아온다는 메시지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 속담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물었더니, 현재 자신의 인생관에 비추어볼 때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속담에도 공감할 수 없다고 답하는 이들이 실제로 있었다. 그들의 마음에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시간을 보는 마음, 다섯 가지

우리는 평생의 시간을 서로 다르게 인식하면서 살아간다. 일생 동안 사용하는 시간의 주관적인 양과 질이 사람마다 다를 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의 특성에 따라 인식하고 경험하는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심리적 시간이 차이 나는 까닭은 시간에 대한 가치관, 즉 시간에 대한 조망을 다르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1]

시간을 보는 마음의 눈은 우리 삶의 꽤 많은 면을 반영한다. 출처/ pixabay.com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자 짐바르도(Philip Zimbardo) 연구진은 시간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 그리고 학습과 기억과 같은 여러 가지 통합적 견해에 근거하여 크게 다섯 가지의 시간관을 제안했다.[2] 시간에 대한 다섯 가지 조망은 △과거 부정, △과거 긍정, △현재 쾌락, △현재 숙명, 그리고 △미래 지향이다. 과거, 현재, 미래 중 언제의 일을 생각하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과거나 현재, 미래를 생각할 때 어떤 느낌을 갖는지는 당신이 어떤 시간관을 지니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시간에 대한 태도, 즉 시간을 보는 마음의 눈은 개인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포함한 우리 삶의 꽤 많은 면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짐바르도가 제안하는 다섯 가지 시간조망은 각각의 장단점을 갖는데,[2] 그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과거에 했던 행동을 자주 후회하는 편이다’, ‘과거에 했던 실수 중에 지워버리고 싶은 것들이 많다’와 같은 물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 그런 사람은 과거를 부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본다고 말할 수 있다. 평범한 사건을 좋지 않게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으며 취미 생활이나 생산적인 일에 큰 열정을 갖기 어려워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에 비해 좋았던 시절의 행복한 추억을 쉽게 떠올릴 수 있고,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과거에는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더 많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은 과거를 긍정적으로 조망하는 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이들 중에는 지난날에 대해 따뜻하고 감상적인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며, 아팠던 경험도 좋은 추억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현재-쾌락적 시간조망의 특성을 지닌 사람은 현재의 즐거움과 만족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모험심이 강하고 쾌활하며 가끔 충동적이기도 하다. 삶에는 적잖이 자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하루하루 충실히 사는 데 만족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현재-쾌락적 시간조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시간에 대해 현재-숙명적 태도를 지닌 사람의 특성은 어떨까? 이런 사람들은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이는 자기 삶은 스스로 통제하기가 사실상 힘들다는 믿음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노력보다는 운이나 상황, 타고난 환경 등에 의해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적은 편이라고 한다.

반면에 미래-지향적 시간조망을 가진 사람은 미래에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당장 보상이 없더라도 기꺼이 인내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에 있을 보상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실하고 변함없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바람직한 사회에서 요구될 만한 긍정적 태도를 많이 지닌 사람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노력에 따른 보상에 대해 생각이 뚜렷하기 때문에 계산적이고, 또한 거시적인 변화에 소극적이며 보수적인 특성도 지닌다고 한다.

시간에 대한 가치관은 앞서 살펴보듯이, 과거 경험의 회상과 평가, 현재 경험하는 사건에 대처하는 방식,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간조망은 사회문화적 요인과 밀접히 연관되기 때문에 문화에 따라 시간조망을 구성하는 요인들에서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회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간조망은 개인이 갖는 시간관에 큰 영향을 미친다.[3] 다시 말해 한 사회의 전통적 시간조망은 한 사회의 구성원 개인들이 공유하는 내면의 가치관으로 확장해 볼 수 있는 개념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특정 문화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간조망을 밝혀보는 것은 개개인이 지닌 가치관을 이해하는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통적인 시간관은 과연 어떠했을까?

전통문화의 시간관, 현재-숙명적 태도

내가 속한 연구팀이 이런 물음을 풀기 위한 연구를 수행한 적 있다. 우리는 우리사회의 전통적 시간조망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 중 하나가 속담일 것이라고 판단했다.[4] 계몽을 위한 격언이나 위인의 명언으로 구성되는 서양 속담과 달리, 우리나라의 전통적 속담은 오랜 세월을 거쳐 민간 대중이 널리 사용한 짧은 언어 표현 형식의 하나이다. 대부분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채 구전되는 민간 언어로, 우리 민족이 영위해온 삶의 슬기를 바탕으로 수많은 가르침과 지혜를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따라서 속담은 속담을 쓰는 사람들의 사고와 마음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지혜를 간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현재 우리말 속담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9603개가 수록되어 있다.[5] 연구팀은 9603개 속담을 대상으로 시간조망과 관련된 속담을 선별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표제어의 표현 방식이 아니라 뜻풀이 내용이 의미하는 바가 시간조망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는 속담을 선별한 것이다.

각각의 시간관에 해당하는 평정 점수가 높은 속담들. 조사에서는 속담의 뜻풀이도 함께 제시되었다.여러 연구자들의 평가와 결정을 통해 선정된 시간조망 관련 속담은 총 544개였다. 지울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나타내는 ‘개가 개를 낳지’ 같은 과거-부정 속담, ‘구관이 명관이다’와 같은 과거-긍정 속담, 당장의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예견할 수 없는 결과를 놓고 흥정하는 의미가 담긴 ‘도둑놈이 씨나락을 헤아리랴’ 같은 현재-쾌락적 가치관이 담긴 속담도 있었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거나 ‘산 넘어 산이다’와 같은 현재-숙명적 가치관이 담긴 속담이 있는가 하면,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고, 죽을병에도 쓸 약이 있다’는 미래-지향적 가치관의 속담도 많이 있었다 (오른쪽 표 참조).

이런 조사와 분류를 통해서 우리말 속담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간조망 유형의 속담은 현재-숙명적 시간관의 속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현재를 숙명적으로 보는 가치관을 지녔다.

우리말 속담 중에는 현재-숙명적 시간조망을 반영하는 것이 절반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50.5%). 이런 속담의 수가 많다는 사실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정서가 다소 현세적이고 운명론적이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6] 아울러 우리 문화의 특성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한(恨)과 원(怨) 그리고 홧병 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7]

두 번째로 많은 속담이 미래-지향형(36.6%)이고, 세 번째가 과거-긍정형(9.3%)이었고, 나머지 두 유형, 즉 현재-쾌락형(2.4%)과 과거-부정형(1.2%)이 드물게 나타났다. 미래-지향형 속담은 현재-숙명적 시간조망의 속담만큼 꽤 많은 수를 차지하는데, 속담이 주는 교훈의 특성을 고려할 때, 우리 전통 문화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는 미래에는 나아질 것이라는 위로와 위안을 반영하는 것일 가능성이 큰 것 같다.

속담을 통해 바라본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관은 현재-숙명적이었다. 그래야만 했을 것으로 보인다. 노력해도 미래가 달라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믿음을 가졌고, 체념과 냉소가 희망과 낙관을 압도하기도 했을 것이다. 현재 삶은 운명과 복이 좌우한다는 굳은 믿음이 체념하는 삶을 살게 했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되뇌면서 위로하고 위안 받는 삶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우리말 속담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그렇다.

현대 한국인의 시간관, 절망하는 30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볼까. 시간에 대한 가치관은 전통적 시간관에 비해 얼마나, 어떻게 다를까? 연구팀은 우리말 속담 중에 몇 개를 선정해 두 달에 걸쳐 사회조사를 벌였다. 시간조망을 내포한 속담 중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속담을 선정해 표제어와 뜻을 모두 제시하고서 응답자들의 공감 정도를 측정해 보았다. 현재 자신의 인생관에 비추어볼 때 제시된 속담과 그 뜻에 얼마나 공감하는지를 7점 척도(‘전혀 공감할 수 없다’ 1점부터 ‘매우 공감한다’ 7점까지)로 대답하게 했다. 설문 대상은 직장인 250명이었으며 20대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전형적으로 설문조사는 사람들한테 자신의 행동이나 의견에 관해 묻는다. 전집(모집단)에서 표본을 선정하여 그 표본 조사를 통해 전집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행해진다. 설문조사에선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물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에 대해서도 물을 수 있다. 설문조사는 사회과학 연구방법으로 널리 사용된다.[8]

설문조사의 장점은 응답자들한테 의견이나 태도, 동기에 대해 직접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응답자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의견이나 태도, 동기 등을 추론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생각을 직접 알아보는 데 유용하다. 또한 대량의 자료를 신속하게 모으는 일이 비교적 쉽다. 다만, 진실과 거리가 먼 응답이 아니어야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없다? 

오늘날의 직장인 2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흥미롭지만 결코 웃고 넘기지 못할 결과를 얻었다. 공감도에 대한 분석은 현대인의 시간조망이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연령별로 분석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놀라운 결과는 공감도에 따른 효과의 패턴이 특정 연령대에서는 큰 차이를 나타냈다는 점이다. 20대와 40대, 그리고 50대의 직장인은 ‘십년 적공이면 한 가지 성공을 한다’ 같은 미래-지향적 가치관에 공감하는 특성을 보였다. 그 다음으로는 현재-숙명적 가치관에도 공감했으나, 과거를 돌아보는 두 가지의 과거-긍정적 시간관과 과거-부정적 시간관에는 크게 공감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30대는 현재-숙명적 시간관과 과거-부정 시간관에 공감할 뿐, 과거-긍정적 가치관과 미래-지향적 가치관에는 공감의 정도가 크게 떨어졌다. 특히, 미래-지향적 시간관의 공감정도 점수는 2.93점의 아주 낮은 점수로 눈에 띄는 결과를 보였다. 다른 가치관의 평균점수와 비교할 때, 미래-지향적인 시간치관은 확실히 공감하기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30대의 마음에는 쥐구멍에는 볕 뜰 날이 없고, 고생 끝에는 낙도 없다. 게다가 초생에 안 된 것은 그믐에도 안 될 일이고, 죄는 지은 데로 간다는 데 그렇지도 않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들에게 내일이, 펼쳐질 미래가 이토록 깜깜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들에게 미래를 빼앗아 버린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구년지수 해 돋을까? 

9년 동안이나 계속되는 큰 홍수에도 끝내 볕이 드는 날이 있다는 속담으로 ‘구년지수 해 돋는다’라는 말이 있다. 현재 상황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결국엔 좋은 보상이 있으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노력을 통해 받는 보상은 정당하고 정의로워야 하는 이유가 있다. 사람은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오늘을 살기 때문이다.

출처 / Wikimedia Commons오늘날 젊은 사람들은 많은 것을 포기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에 이어, 인간관계와 내집마련까지 다섯 가지를 포기한 세대라 하여 오포세대라 부르기도 한다. 결코 웃을 일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은 모습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노력의 결과로 얻는 미래 보상을 불신하는 태도는 이런 속담과 시간관에 관한 연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내일에 초점을 맞추면 결과를 짐작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원하는 보상을 이끌어내는 행동이 무엇인지, 지금 하는 하찮은 일에 언젠가는 보상이 따르게 될지 등을 예측하려면 필시 사회는 믿을 수 있고 안정적이어야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야 하는 세상, 장마당에 쌀자루는 있어도 글자루는 없다고[9] 생각하게 만들어 버린 막막한 오늘. 미래에 대한 절망감은 앞으로의 세대에게도 분명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것이다. 역사가들은 역사를 지속성을 지닌 커다란 흐름으로 본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지금의 절망은 새로운 희망의 시작일 수 있다. 더 멀리서 보면 역사는 꾸준히 전진하고 있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농담처럼 절망은 게으름이다. 우리는 부지런히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주]

[1] Zimbardo, P. G., & Boyd, J. N. (1999). Putting time in perspective: A validreliable individual-differences metricJournal of personalityand social psychology, 77(6), 1271.

[2] Zimbardo, P., & Boyd, J. (2008). The time paradoxThe newpsychology of time that will change your lifeSimon and Schuster.

[3] D‘alessio, M., Guarino, A., De Pascalis, V., & Zimbardo, P. G. (2003). Testing Zimbardo’s Stanford Time Perspective Inventory(STPI)-Short Form An Italian StudyTime & Society, 12(2-3), 333-347.

[4] 이고은, 신현정 (2014). 속담에 내포된 전통적 시간조망과 현대 한국인의 시간조망. 한국민족문화, (53), 205-234.

[5]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On-Linehttp://stdweb2.korean.go.kr/

[6] 이규태 (1991). 한국인의 의식구조. 신원문화사.

[7] 최상진 (2000). 한국인의 심리학. 중앙대학교 출판부.

[8] Martin, D. (2007). Doing psychology experimentsCengageLearning.

[9] 당장 먹고살 수 있는 벌이를 하는 것이 공부를 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
이고은 부산대 인지심리학 박사과정 
<기사 출처 : 한겨레신문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