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3일 화요일

싱가포르, 승객 태운 무인차 첫 시범운행 채비



교통혼잡 줄이고 차 흐름 좋아져 온실가스 감축 효과
벤츠 아우디 구글 등 자율주행 신기술 잇달아 선보여


지난 2010년 구글이 촉발시킨 무인자동차(자율주행차) 개발이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박람회 ‘CES’에서는 자동차업체들이 대거 참가해 그동안 개발해온 자율주행기술을 일제히 선보였다. 

올해는 메르세데스 벤츠가 내놓은 무인차 콘셉트카 ‘F015 럭셔리 인 모션’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중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평을 들은 이 콘셉트카는 탑승자들이 서로 마주볼 수 있도록 회전이 가능한 좌석, 보행자를 파악할 수 있는 컴퓨터 두뇌 등을 갖추고 있다. 일단 탑승자가 자율주행 모드를 선택하면 핸들이 대시보드 안으로 쏙 들어가 차내 공간을 넓혀준다. 그러면 탑승자들은 앞쪽에 있는 운전석과 조수석을 뒤로 돌려 마주보고 앉을 수 있다. 마치 응접실 같은 분위기 연출되는 것. 주행을 위해 굳이 전방을 주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벤츠는 지난해엔 자율주행 트럭을 선보인 바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무인차 시제품을 내놓았던 아우디는 올해는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전기차 ‘A7’로 고속도로 시범주행을 해보였다. BMW는 i3를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운전자가 스마트워치로 차를 부르면 차가 스스로 달려와 운전자 앞에 대기하고, 자동차가 알아서 장애물을 피하는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였다.

무인차 개발 노력에 발맞춰 미국,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무인차의 도로 시험주행도 잇따라 허용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무인차가 드디어 실제 도로에서 승객을 태우고 주행하는 모습을 올해 안에 볼 수도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정작 무인차 운행의 첫 테이프를 끊는 나라는 미국도 영국도 독일도 아닌, 적도지방의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될 것 같다. 싱가포르는 올해 안에 교통혼잡지역에서 무인차 시범운행을 시작한다는 구상이다. 싱가포르 교통당국이 무인차 시험운행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지트니 서비스다. 지트니는 시민들의 환승 편의를 위해 공항, 버스 정류장, 기차역 등을 오가는 교통수단이다. 차량 크기가 작은데다 짧은 거리를 저속으로 달린다는 점에서 골프장을 운행하는 카트와 비슷하다. 


에 따르면, 싱가포르 교통부의 미래담당부서 책임자인 람위샨(Lam WeeShann)은 지난 연말 MIT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 참석해 “싱가포르 정부는 자율주행차가 교통혼잡을 줄이는 동시에, 도시를 승용차가 아닌 보행자와 자전거, 대중교통이 넘치는 곳으로 재구축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모나코에 이어 세계 2위의 인구과밀국이다. 따라서 교통혼잡은 당국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이다. 자동차 운행을 억제하기 위해 자동차를 사려면 차값에 거의 맞먹는 자동차등록증을 구입하도록 하고, 아침 러시아워 전에 시티 트레인을 이용하면 요금을 면제시켜주는 등 채찍과 당근 정책을 병행하고 있지만, 이런 방책으로 교통혼잡을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교통혼잡을 해결해줄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구상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무인차이다. 무인차를 시내 요소요소에서 운행하면 사람들이 굳이 승용차를 타지 않더라도 손쉽게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어 교통체증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싱가포르는 이를 위해 몇 년 전부터 MIT와 손잡고 무인차 테스트를 해왔다. 맨 처음 테스트는 싱가포르국립대 캠퍼스 내에서 무인 골프 카트 2대로 시행했다. 2014년엔 미쓰비시의 전기차 아이미브(i-MiEV)를 자율주행차로 개조해 추가로 시험주행을 했다. 또 싱가포르 최초의 친환경 산업단지 클린테크 파크와 난양공대 캠퍼스에서는 나비아(Navia)라는 이름의 무인버스를 셔틀버스로 운행하고 있기도 하다. 싱가포르 시민들은 지난해 가을 주롱지구의 중국·일본 정원에서 처음으로 무인차를 타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2주 동안 500명이 이용했다고 한다. 시험주행에는 온라인 예약과 차량간 통신 기능을 갖춘 교통관리 시스템이 동원됐다.

무인차가 도로를 지배하게 되면 도시의 풍경은 어떻게 바뀔까? 신호등은 과거의 유물이 될까? 말 그대로 완벽한 자율주행 능력을 갖추는 무인차가 있다면, 신호등 같은 현재 교통시스템의 핵심요소들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차량간 통신기능이 무인차들의 질서정연한 도로주행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당국과 함께 무인차 운행 시스템 개발을 연구하고 있는 MIT의 선임연구원 파올로 산티는 무인차 교통시스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지금보다 2배나 많은 차들이 교차로에서 스스로 주행 노선을 조정하는 능력을 보여줬다고 전한다. 그는 “이는 무인차가 교통 혼잡을 줄이는 동시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도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때마침 구글은 완성품 형태를 갖춘 무인차 시제품을 지난해 말 공개했다. 구글은 지난해 5월 자체 개발한 무인차를 공개한 바 있지만, 당시에는 전조등도 켜지지 않는 모형제품 수준이었다. 이후 스티어링, 브레이크 등의 부품과 컴퓨터, 센서 등 자율주행 장치들에 대한 시험을 거쳐 이번에 공개한 첫 시제품은 지붕 위의 레이저 거리측정기가 더 작아지는 등 맵시가 한결 나아졌다.

구글은 올해 안에 이 차로 캘리포니아 도로에서 실제 주행 테스트를 할 계획이다. 다만 안전을 위해 당분간은 운전자가 탑승해 무인차를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수동조작을 할 것이라고 한다. 구글의 무인차 사업 책임자인 크리스 엄슨은 1월 중순 열린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5년 안에 일반인들이 실제 도로에서 무인차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싱가포르 당국은 자신들의 무인차 도로주행 프로젝트를 함께할 업체가 구글인지, 아니면 다른 자동차 메이커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무인차가 실제 도로에서 일반 차들처럼 주행할 수 있으려면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자동차법규나 사람들의 고정관념 등 비기술적 요소 말고도 기술적 요소들도 아직 갈 길이 멀다. 구글의 무인차 역시 차선 유지나, 자동 주차같은 차원을 넘어 일반도로에서의 보행자나 자전거 출현 상황에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눈이나 비 등 악천후에서의 대처능력은 더욱 미흡하다. MIT 토론회에서는 지도의 정확성이 걸림돌로 지적됐다. 한 내비게이션 업체 관계자는 무인차에는 20센티미터 이내의 정확도를 갖춘 3차원 입체지도가 필요한데 현재의 지도는 이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무인차 운행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운행 지역은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도 실제 도로 주행이 가능한 것, 아마도 싱가포르가 소규모 도시국가인데다 오랜 기간 강력한 행정 시스템을 구축해온 역사적 경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사 출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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