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3일 수요일

‘교통오지’ 강진, 서울서 세시간이면 도착… 남도 봄정취 ‘만끽’

나주+강진 ‘나강’, 1박2일 루트
백련사 절마당에서는 강진만 바다가 이렇게 조망된다. 다산초당에서도 강진만은 같은 모습으로 바라다보인다. 혜암선사와 다산이 늘 보았을 이 강진만 바다. 오늘은 내가 홀로 바라본다. 나주강진(전남)=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나주와 강진이 ‘1박 2일’ 여행지로 뜨고 있다. 4월 2일 호남고속철도 1단계(충북 청주 오송역∼광주광역시 송정역) 완공으로 서울에서 나주가 두 시간, 강진이 세 시간 이내로 편입되면서다. 이 정도면 부담 없이 오가기에 딱 좋은 거리. 나주와 강진에서 즐기는 1박 2일 여행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1단계 개통 전만 해도 용산∼나주고속철도는 세 시간이 걸렸다. 그게 4월 2일부터 한 시간이나 단축됐다. 그런데 강진은 월출산을 나주와 남북으로 나눈 이웃인데도 교통은 여전히 ‘오지’. 서울서 365km(고속버스로 5시간)나 떨어진데다 직통 고속도로나 고속철도가 없어서다. 비록 ‘남도답사 1번지’의 인기여행지라지만 한 번 가려면 큰맘 먹고 가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나주∼강진은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 그러니 KTX로 나주를 경유하면 강진도 세 시간 거리로 단축된다. 강진 가는 길에 나주에서 영산포 홍어와 나주곰탕도 맛보는 이 루트. 영산강 황포돛배도 타고 2000년 역사의 영산강 고대문화도 두루 섭렵하니 ‘꿩 먹고 알 먹고’다. 그 1박 2일 ‘나강(나주+강진)’루트로 안내한다.

두 시간 만에 당도하는 나주

오전 8시 53분 용산역. 목포행(11시 17분 도착 예정) KTX509열차가 출발했다. 내릴 곳은 나주역. 하지만 목적지는 강진이었다. 강진은 20년간 수도 없이 다녀온 곳이다. 그래도 철도로 찾기는 처음. 두 시간 이상을 단축할 새 루트인 만큼 마음도 발걸음도 가벼웠고 기대역시 컸다. 게다가 영산강, 홍어, 곰탕 등등 기대할 만한 게 많은 ‘비단고을’ 아닌가. 또 철도는 주말이든 평일이든 운행시간이 일정하니 귀경길에 두세 시간씩 지체하는 고속도로를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주 경유 강진여행은 기대할 만하다.

호남고속선은 오송역(충북 청주시)∼목포역의 230.9km. 여기도 2004년 경부고속철도 개통과 동시에 KTX가 투입됐다. 하지만 철도가 고속선이 아닌지라 제 속도를 내기는 언감생심. 그게 지난달 개선됐다. 1단계로 송정역(광주광역시)까지 고속철이 완공돼 제 속도를 내게 된 것이다. 내가 탄 그날도 호남고속철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정확히 두 시간 만에 나주 역에 닿았으니까.

KTX고속열차가 영산강변을 주행 중이다.
‘감성여행 1번지’ 강진을 찾아

나주에서 강진은 버스로 한 시간이 걸렸다. 우선 성전면의 ‘석천한정식’ 식당에서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내는 남도밥상으로 1박 2일 나강 여행길의 첫 문을 열었다. 홍어삼합(삭힌 홍어회+돼지편육+묵은 김치) 한 점에 세 시간 이동의 피로가 싹 가셨다. 마침 그날(4월 23일)은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쓴 영랑 김윤식(1903∼1950)의 ‘영랑생가’에서 모란이 꽃을 활짝 피운 날. 이 꽃은 1년 중 딱 닷새밖에 피지 않는다. 나는 모처럼 거기서 시비에 새겨진 그의 시 ‘동백닙에 빗나는 마음’도 읽으며 화창한 봄볕을 만끽했다. 동백꽃은 떨어져 더 아름답다. 그날 강진은 떨어진 꽃으로 나를 기쁘게 했다.

여기서 백련사는 자동차로 30분 거리. 강진만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 절은 언제 찾아도 기분이 좋다. 하지만 지난 십여 년은 찾을 때마다 공사 중이었다. 올해도 역시 같았다. 그간 공사로 경내가 많이 정비되긴 했지만 20여 년 전의 그 소박함은 사라져 마음은 울울(鬱鬱)했다. 그나마 변함없이 짙은 숲 그늘 드리운 동백 숲과 그 앞 산기슭을 덮은 차밭의 초록 찻잎이 나를 위로했다.

그 백련사와 고개 너머 다산초당은 800m 산길로 이어진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때는 1808년. 이때부터 혜장선사(1772∼1811)가 입적할 때까지 두 분이 즐겨 오가던 길이다. 혜장은 다산을 존경했다. 스스로 지은 ‘아암(兒庵)’이란 호가 그걸 방증한다. 다산은 혜장에게 고집스러운 성품을 부드럽고 순하게 고치되 젖먹이 어린이처럼 하라고 했다. 혜장은 그 말에 따라 자신의 호를 아암이라 했다.

그 산길은 호젓하고 아늑하고 그윽하며 고적하다. 세상 어느 숲길이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 수 있을지…. 그런데 그길 끝의 다산초당에서 그만 억장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게 됐다. 초당 마당의 다조를 등산화 발로 딛고 올라서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 모습이다. 다조는 다산초당의 다산4경(정석 약천 연지 등)에 드는 유물. 다산 선생이 찻물을 끓일 때 차 부뚜막으로 이용하던 자그만 바위다. 무심한 관광객을 탓하기에 앞서 확연하게 알려줄 안내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이 더 크다. 내친 김에 하나 더 지적하자면 초당임에도 기와를 얹은 것. 초당이라면 초당답게 초가집이어야 한다.

초당을 내려와 강진만 바다로 향했다. 그날은 가우도(駕牛島)라는 섬에서 그 바다를 맞았다. 열네 가구에 서른한 명의 주민이 사는 이 섬. 숲이 울창한 산 하나로 이뤄졌는데 강진만 한가운데 떠있는 듯 보인다. 그 섬과 강진만의 양편 육지가 두 개의 출렁다리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 섬은 강진만을 건너는 징검다리 모습이다. 이윽고 뉘엿뉘엿 해는 지고 저녁식사를 할 요량으로 강진만 남단 마량항을 찾았다.

포구에서 ‘항’으로 진화한 이곳. 옛 정취는 사라졌어도 볼거리는 늘어났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수산시장이 그것. 이날 이곳 ‘궁전횟집’의 생선회는 강진만 바다가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실감케 한 좋은 본보기였다. 그날 숙소는 강진만이 산 사이로 바라다보이는 주작산 중턱의 자연휴양림. 외국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숲 속의 집’에서 그 밤을 보냈다.

천년 목사(牧使)골 나주(羅州)

경주와 상주의 조합인 경상도처럼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의 조합. 그것만으로도 호남에서 나주의 위상이 짐작된다. 그럼에도 그 중심이 되지 못한 이유. 현대에 들어서며 수송수단이 선박에서 기차로 바뀐 탓이다. 영산강 하구의 평야 나주는 신라 고려 조선시대 모두 호남의 중심이었다. 한반도 최초로 쌀농사를 지은 나주평야의 풍부한 물산, 바다와 내륙을 잇는 영산강이란 훌륭한 뱃길 덕분이다. 시내 금성관이 그 상징이다. 조선시대 나주목(牧)의 객사(客使·사신이나 관리가 출장 오면 묵는 숙소)로 모양새부터가 궁궐이다. 거기선 매달 두 차례 한양의 국왕에게 배례도 올렸다.

당시 나주읍은 ‘작은 한양’이라 불릴 만큼 큰 고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주의 금성산과 영산강은 한양의 남산과 한강에 견주어졌고 둘레 3.8km의 거대한 읍성에도 한양처럼 4대문(동정문 서성문 남고문 북망문)이 있었다. 당시 전국 세곡의 20%가 나주에서 걷힐 정도로 경제력도 막강했다.

나는 읍내에 들어서 영산대교 앞 영산강변의 등대 길부터 찾았다. 황포돛대가 오가고 길가 홍어거리에는 홍어전문식당이 즐비한 곳이다. 7, 8년 전만 해도 ‘주몽’ 등 드라마 세트장으로 지은 ‘나주영상테마파크’가 인기였다. 하지만 드라마와 함께 잊혀지며 이젠 한적한 공원으로 변했다. 그렇지만 조용히 산책하며 영산강 풍광을 즐기기엔 그만이다. 맑은 국물의 나주곰탕 식당은 금성관 앞에 몰려 있다.

또 하나.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보다 훨씬 더 풍경이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 길도 있다. 전남도 산림자원연구소(산포면 산제리 산23)에 가면 볼 수 있다.

가우도 해안을 따라 놓은 산책로 ‘함께 해(海)’.
■강진, 여행 팁

강진만의 명소 ‘출렁다리’… 봉황의 기 전하는 주작산…


가우도: 강진만은 바다에서 내륙으로 들어설수록 점점 좁아지는 삼각형의 물골. 그래서 그 넓은 입구를 ‘대구(大口)’라 부르는데 가우도는 그 대구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작은 섬이다. 그런데 이 섬은 동편의 대구면과 서편 도암면 사이에 있는 징검다리처럼 보인다. 그래서 강진면은 다리 두 개를 놓아 두 면을 연결하는 4km의 길을 텄고 그게 요즘 강진만의 명소로 떠올랐다. 그 다리는 걸으면 흔들린다고 해서 ‘출렁다리’라고 불린다. 망호선착장(도암면 신기리)과 섬을 잇는 것은 715m, 저두마을(대구면)을 잇는 것은 438m다. 두 다리는 ‘함께해’(海)라고 이름 붙여진 이 섬의 해안도로(총연장 2.43km)와 연결된다. 이 길에선 후박나무 등이 우거진 조용한 숲의 정취를 느끼며 강진만과 개펄 풍경까지 함께 즐길 수 있다. 섬 정상에는 현재 ‘청자전망대’를 만들고 있는데 강진만 청자로 만든 타워가 들어설 예정이다. 강진군 대구면 저두리 320-11.

주작산 자연휴양림: 주작산(475m)은 강진만과 가까운 도암면의 그리 높지 않은 산. 능선만큼은 마치 봉황이 활짝 날개를 펴고 나는 듯한 모습이어서 그 상서로운 기운을 받기 위해 예로부터 찾는 이가 많았다. 흔히들 백두대간의 기운이 월출산과 덕룡산 능선을 타고 이 주작산 어귀로 흘러내린다고 한다. ‘주작’(朱雀·청룡 백호 현무 등 4신 중 하나로 붉은 봉황을 지칭)이란 이름은 거기서 왔다.

이 주작산에선 이웃한 해남군의 두류산과 완도군의 상황봉, 영암군의 월출산과 다도해 바다가 멀리로 조망된다. 거기를 볼 수 있는 지점이 봉황의 머리부분에 해당되는 곳이다. 그래서 강진군은 이 주작산에 휴양림을 조성하고 그 기운을 받아갈 수 있는 숙박시설을 운영중이다. 입구의 낮은 지대엔 자연휴양관과 한옥 펜션이 있고 한참을 오르는 중턱에는 유럽풍으로 지은 ‘숲 속의 집’(온돌·침실·4인실)이 있다. 유럽의 산중에 들어선 고급리조트에 손색이 없을 만큼 멋지고 깔끔한 산장숙소다. 산중턱에서 산정까지는 40분∼한 시간 거리. 강진군 시전면 주작산길 398, 061-430-3306

홍어삼합. 나주 홍어거리의 전문식당 ‘영산포홍어’.
■나주, 여행 팁

영산강 ‘황포돛배’ 타보고 전통한옥마을서 하룻밤


황포돛배: 하구언 공사로 바다와 결별하기 전까지만 해도 영산강은 황포돛배가 오르내리던 수로였다. 황포돛은 면포를 황톳물로 염색한 것. 영산강 옛 모습 중에 황포돛배의 주유(周遊)야말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이다. 이 배는 강과 바다를 가리지 않았다. 여기 영산포에서 소금이며 세곡을 실어 곳곳에 전달했다.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영산도 칠산도를 거쳐 영산포로 실어 나른 것도 이 황포돛배다. 그래서 나주시는 영산강의 상징이라 할 황포돛배를 두 척 만들어 다야뜰∼중천포 나주영상테마파크(드라마 주몽 촬영세트장)의 3km에서 30분 간격으로 왕복 운항 중이다. 왕복에 40분.

영산포등대 앞(나주시내 등대길)의 영산포 나루터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 첫 번째 이유는 영산포 홍어를 맛볼 수 있어서다. 그곳은 선착장 앞 영산대교 한 끝 등대 길에 조성된 ‘홍어거리’. 홍어전문식당이 줄지어 들어섰다. 그리고 그 뒤편은 일제강점기에 이곳의 쌀 등 물산을 수탈하기 위해 체류했던 일본인의 저택과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 창고 등이 있는 근대문화유적 구역이다. 월요일은 쉰다. 문의 061-332-9775

도래한옥마을: 한적한 농촌의 풍산리 도래마을(다도면 동력길 16)은 풍산 홍씨 집성촌. 그런데 거기엔 아직도 오래된 한옥이 많이 남아 있어 전통마을 그대로다.

하룻밤 묵으며 한옥을 체험할 수 있는 예쁜 집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도래마을 옛집’이다. 이 집은 1936년 지은 근대한옥. 2006년 전남도가 이곳을 전통한옥마을로 지정하던 그해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가 이를 보존하기 위해 모금한 ‘문화유산기금’으로 매입했다. 안채와 문간채는 복원하고 체험용 별당채(4인 1실)는 신축했다. 숙박은 1박에 10만 원이며 취사는 불가. www.ntdorae.com

나주시티투어: 토요일마다 ‘나주로 마실 가자’라는 순환관광버스 운행(오전 10시 40분∼오후 7시). 승차권(1만 원·입장료 제외)은 온라인으로만 판매 중. 남도한바퀴(www.kumhoaround.com) 062-360-8502


Travel Info

찾아가기:
용산∼나주고속철도 시각은 표 참조

맛집: ◇나주 ▽한옥집:나주곰탕 전문식당. 나주시 중앙동 48-7. 061-334-0707 ▽영산포홍어:홍어거리의 홍어전문식당. 나주시 영산동 113, 061-337-5000 ◇강진 ▽석천한정식:성전면 월평리 61-2, 061-432-5050 ▽궁전횟집:마량항 소재. 마량면 미항로 136, 061-433-3044 ▽동해회관:장뚱어탕 전문식당. 강진읍 보은로2길 5-1, 061-433-1180
<기사 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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