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2일 금요일

모르는 전화 걸려와 '돈 얘기'하면 끊으세요

[치밀해진 보이스피싱… '은행인데요'는 옛 수법, 이젠 국세청·금감원까지 사칭]
피해 건수 최근 다시 급증… 모르는 전화는 일단 의심

'범죄 연루' 운운하면 전화 끊고나서 해당기관에 확인해야

경찰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지난 몇 년간 주춤하던 보이스피싱(전화 금융 사기)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06년 6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보이스피싱은 2011년 8244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2년 5709건, 2013년 4765건으로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다 지난해 7635건으로 급증하더니 올해 1~3월에만 2451건이 발생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86%나 증가했다. 피해액도 319억원으로 93% 늘었다.




◇그럴싸한 시나리오에 피해 속출



금융 사기의 고전(古典)으로 불릴 정도로 피해 사례가 많은 보이스피싱이 끊이지 않는 건 피싱 조직이 피해자들의 이성을 흐리게 만들 정도로 감쪽같은 시나리오를 짜 피해자를 낚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은행입니다. 당신의 계좌 정보가 유출됐으니 ○○○ 계좌로 돈을 입금해주세요"라는 전통적 수법이 통하지 않자 최근엔 검찰·경찰,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하는 수법이 유행하고 있다. 특히 평범한 피해자들에게 범죄에 연루됐다고 겁을 준 뒤, 혐의를 벗기 위해선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으로 낚는 수법이다.



공무원 고모(36)씨는 최근 피싱 조직으로부터 자신의 계좌가 국제 금융 사기에 도용됐으니, 검찰 조사가 끝날 때까지 예금을 모두 찾아 금감원 지정 계좌에 보관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놀란 고씨는 돈을 입금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지인의 만류로 피해를 면했다. 피싱 조직이 A씨에게 직접 확인해보라며 알려준 검찰청 홈페이지 주소에 접속해 검색한 결과 A씨의 인적사항과 사건번호, 혐의 내용 등이 화면에 나타나 믿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최근엔 현장에서 직접 돈을 받아가는 수법도 등장했다.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정모(77)씨는 "금융감독원인데 지금 선생님의 주민번호가 도용돼 계좌에 있는 돈이 전액 인출될 가능성이 있다. 즉시 계좌에 있는 돈을 인출해 집안 냉장고에 보관하라. 추후 금감원 직원이 직접 방문해 조회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다급해진 정씨는 서둘러 1억원을 인출해 냉장고에 보관했다. 그 후 금감원 직원인 척 집을 방문한 피싱 조직원은 정씨에게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해오라"고 시킨 뒤 냉장고에 있는 돈을 훔쳐 달아났다.




또 금융 기관을 사칭해 "계좌가 범죄 조직에 노출됐으니 현금을 지하철역 물품보관함에 넣어두라"고 지시한 뒤 지하철역에서 가짜 신분증을 보여주며 돈을 받아가는 방식, 녹음된 비명을 들려주고 자녀를 납치하고 있으니 당장 돈을 부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거나 생활고에 찌든 가장들에게 '장기를 팔지 않겠느냐'고 접근해 장기 검사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방식까지 등장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가족이 사고를 당했으니 사고 처리를 위해 돈을 보내라고 하거나 금리가 낮은 안심전환대출로 바꿔주겠다며 신용등급을 높이기 위해 입금을 유도하는 수법도 대개 보이스피싱이다.




◇"의심하고 확인하고 그냥 끊으라"










보이스피싱과 사이버금융 범죄에 당하지 않으려면 '의심·확인·무시'하는 버릇을 들이라고 경찰은 말한다.




회사원 김모(33)씨는 최근 해외 출장 중인 동료로부터 SNS를 통해 '갑자기 현금이 떨어졌는데 10만원만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김씨는 혹시라도 SNS 명의 도용이 됐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 전 여자친구 직업은 무엇이고 최근 그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과 같은 둘만 아는 질문을 했고, 더 이상 답은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일단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나 문자 메시지는 사기가 아닐까 '의심'을 하고, 범죄 연루 운운하면 일단 전화를 끊고 직접 해당 기관에 확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걸려온 전화가 사기 범죄로 등록·신고·접수된 번호일 경우 경고 메시지가 뜨는 '사이버캅' 앱을 설치하는 것도 보이스피싱 피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살인·강도 검거율은 90%를 넘고 있지만 지난해 보이스피싱 검거율은 54%에 그쳤다. 범죄 조직이 주로 중국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있어 수사 공조도 어렵고 피해자의 돈을 송금받는 계좌도 대포계좌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추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은 "검찰·경찰·관공서·은행 등은 절대로 전화·문자로 개인 정보나 계좌 정보를 요구하지 않고 송금·인출도 유도하지 않는다"며 "대응 원칙은 간단하다. 상대방이 '돈'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면 그냥 끊으라"고 말했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