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3일 일요일

니하오! 어서 단속해 보라고요



“니하오! 한국 단속반들 반가워요, 어서 승선 조사하세요”

■ “야, 무슨 그런 식상한 아이템을 하냐?”

제가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서의 중국 어선 불법 조업 실태를 취재한다고 했을 때 어느 선배 기자가 한 말입니다. 저희 취재기자들은 선후배 동료들과 취재 관련 의견을 나누면서 좋은 정보도 얻고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그런데 선배의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잠깐 머뭇거리게 됐습니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 문제는 이미 언론에 많이 보도됐기 때문에 새로울 게 없다는 것이죠. 그러나 지금까지 취재를 하면서 깨달은 것 하나는‘답은 항상 현장에 있다’입니다. 답답하고 어려울 때 취재 현장에 가면 뭔가가 항상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이 깨달음을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바다로 나가보면 뭔가 답이 있을 것이다.

■ “배타적경제수역이 뭐야? 배타고 가는데야?”

배타적경제수역(EEZ)이란 말 쉽지 않죠. 배 타고 가는 곳은 맞습니다. 배타적경제수역은 영토에서 200해리, 370킬로미터 정도까지의 수역인데 우리 주권이 미치는 영해보다는 훨씬 넓지요. 다른 나라의 선박들이 이곳을 지나는 것은 문제 없지만 이곳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제한됩니다. 자원개발이나 어업 활동은 해당 국가의 허가 없이는 못하는 것입니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은 대부분 배타적경제수역에서 이뤄집니다. 그렇게 문제가 되면 아예 중국 어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상 사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죠. 우리나라 어선도 일본이나 러시아 등 다른 나라의 배타적경제수역에서 조업을 합니다. “너희들은 우리 집 앞에서 사탕 팔지 마” 그러면서 내가 다른 집 앞에서 열심히 음료수를 팔아 돈을 번다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욕 바가지로 먹고 그 동네에선 살기 힘들어 지겠죠. 중국 어선들이 우리 EEZ에 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다만 몇 척이 얼마나 고기를 잡고 정당한 방법으로 잡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것을 잘 감시하는 것은 바로 우리 정부의 책임입니다. 감시는 잘 되고 있을까요?

■ “니하오! 한국 단속반들 반갑습니다. 어서 승선하셔서 조사하세요”

답은 현장에 있다고 말씀 드렸죠? 그래서 어업지도선을 타고 바다로 나왔습니다. 답을 금방 찾았을까요? 그런데.. 헉! 답은커녕 저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어업지도선 무궁화 23호를 타고 목포에서 10시간쯤 걸려 배타적경제수역에 도착했는데요. 무궁화 23호는 국가어업지도선으로 지난해 건조된 1600톤급 선박입니다. 중국 배들이 레이더에 포착되면 본선에서 고속단속정을 내려 수킬로미터를 가서 승선조사를 합니다. 단속정이 접근하면 저는 중국 어선들이 도망을 치거나 둔기나 흉기로 막 저항할 줄 알았습니다. TV에도 이런 모습이 종종 나왔죠. 그런데 웬걸 중국 선원들은 전부다 친절했습니다. 단속정이 다가가면 “니하오!” 인사를 건네고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단속정이 어선에 잘 붙어 잘 올라갈 수 있도록 밧줄도 받아 묶어주고요. 중국 선장이나 선원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승선 조사에서는 어업허가증의 위조 여부나 어획량 신고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중점적으로 살펴보는데요. 저희가 조사한 20여 척 모두 한 달 가량 우리 EEZ에 머물면서 조업를 했는데 어획량은 거의 없었습니다. 중국 어선들은 조업한 뒤 2시간 이내에 우리 수산당국에 어획량을 보고하게 돼있습니다. 한 달 정도 머물면서 100-150킬로그램 정도를 잡았다고 신고를 했습니다. 그물은 16킬로미터 정도를 치는데 어획량이 그 정도라는 겁니다. 조업일지를 보면 한 달 동안 1-2번 그물을 쳐서 100킬로그램 안팎을 잡았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허가 서류와 어획량, 어업일지 모두 정확합니다. 눈처럼 깨끗해 보입니다. 단속 공무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 알고 있죠. 사실은 훨씬 많이 잡아 놓고 허위 보고를 하는 것이죠. 중국 어선들은 1년에 10톤 정도만 잡을 수 있도록 허가받았는데 더 많은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입니다. 어획물은 단속반이 오기 전에 운반선에 실어 보내버립니다. 그런데 증거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단속할 수가 없죠. 중국 선원들은 생수를 건네거나 음료수도 주더군요. 고생한다며. 하지만 열 받아서 받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 “정말 미치도록 잡고 싶습니다”

답은 나왔습니다. 어선을 아무리 조사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운반선을 잡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운반선을 잡기도 쉽지 않습니다. 레이더에 나타난 중국 선박들은 점으로만 보이는데 구분이 안 되거든요. 속도가 좀 빠르다 싶으면 쫓아가서 확인을 하는 수 밖에 없죠. 무궁화 23호 이규철 선장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김 기자님, 저 정말 이 불법 어선들 미치도록 잡고 싶습니다” 이런 근성이 없으면 단속을 할 수 없겠죠. 운반선을 찾기 시작했는데 레이더에 운반선처럼 보이는 어선이 포착됐습니다. 단속정을 내려 10킬로미터 정도를 추적했는데 저 멀리 검은 연기를 내며 전속력으로 도주하는 선박을 발견했습니다. 선박을 세우고 조사를 시작했는데 어창과 갑판에서 어획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선에서 받은 어획물을 중국으로 운반하고 있던 배였죠. 어업 일지에도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훔친 물고기들이었죠. 이런 운반선 3척을 검거했습니다. 운반선 선원들은 “니하오!“ 라고 인사하지도 않았고 물을 건네지도 않았습니다. 심각한 표정들이었죠.

■ 왜 EEZ를 지켜야 하는가?

단속 공무원들의 말에 따르면 중국 어선들은 하루에 500킬로그램에서 많게는 1톤을 잡는다고 합니다. 배타적경제수역에서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는 수산물들은 그 양을 가늠할 수조차 없습니다. 광활한 EEZ를 지키는 우리의 단속 선박과 인력은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저희가 타고 취재했던 무궁화 23호도 정원 22명에 15명만 승선해 단속을 하고 있었습니다. 불법 조업으로 단속된 중국 어선은 일단 우리측에 나포돼 조사를 받게 됩니다. 불법 사항에 따라 많게는 2억 원을 내야 풀려납니다. 사실 단속 선박과 인력을 늘려 단속을 많이 하게 되면 중국 어선들은 몸을 사리게 되고 우리에게 들어오는 벌금도 훨씬 많아지게 됩니다. 철저하게 단속하면 우리는 돈도 벌고 우리 어족자원도 지킬 수 있는 겁니다. 단속 방법의 개선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기 때문에 기존의 단속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올해 우리 EEZ에 어업 허가를 받은 중국 어선이 1600척 인데요, 중국과의 어업협정을 통해 어선 숫자를 계속 줄이는 노력도 해야합니다. 바다는 연결돼 있습니다. EEZ가 황폐해지면 우리 근해도 황폐해집니다. EEZ에 구멍이 뚫리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어민들과 우리 국민들이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기사 출처 : KBS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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